또 다른 나와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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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모두 외부에 저장되면 또 하나의 내 영혼이 만들어질까?’
석현은 ShadowEgo 서비스를 쓰지 않고 직접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곤 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그런 느낌. 과거에는 없었던, 묘한 충돌이 주는 불편함 같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해봤지만, 다들 뭐하러 기억을 직접 떠올리려고 하느냐는 핀잔을 줄 뿐이었다. 힘들게 직접 떠올리려고 하지 말고 서비스를 써서 찾으라는.
‘요즘 나온 서비스들은 네 두뇌보다 1만 배는 더 많은 기억정보를 저장하고 정확하게 다 불러내 준다구.’
친구 녀석이 했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석현은 Demon이라는 닉네임으로만 알려진 그 기술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는 답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러나 어디에도 그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었다. 그저 서울 동대문구의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소문만 매니아들 사이에서 떠돌 뿐이었다.
‘한번 동대문구를 다 뒤져볼까…?’

석현은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듯 의자를 뒤로 젖히자 왼쪽 눈의 시야에 작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현재의 자세는 요추4번과 5번 사이의 디스크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석현은 싱거운 웃음을 웃었다.

‘Demon이 기다립니다. 지금, 집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T-485에 탑승하세요.’
석현은 눈이 번쩍 뜨였다. 창밖을 확인하자 T-485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Demon이 날 부른 거라고?’
T-485가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진 석현은 미친듯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T-485는 100년 전에나 지어졌을 법한 고층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석현이 내리자 T-485는 진하고 깨끗한 초록빛으로 변한 채로 돌아가 버렸다.
‘여기는 동대문구가 아니잖아.’
석현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2층 20C호 방으로 올라오세요’
석현의 오른쪽 눈에 메시지가 잠시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메시지를 의심없이 따라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Demon을 만나볼 기회일 수도 있는데’

석현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흰색 복도에 흰색 벽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벽에는 아무런 표시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런 곳에 방이 있다고?’
석현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석현이 복도 끝에 도착해서 고개를 돌리자 왼쪽 벽에 20C라는 표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온라인 상에서 만나도 될텐데 왜 굳이 직접 오라고 했을까?’
석현은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고작 12분이 지났을 뿐인데.
30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석현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눈에 아무런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떠 있던 생체지수, 환경지수, 위험지수, 움직임 레벨 수치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차단된 것처럼.

“안녕하세요, 오시느라고 힘드셨죠?”
석현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청바지에 운동화, 안경을 쓴 짧은 머리의 20대 청년.
“Demon님이신가요?”
“아, 저는 Demon이 보내서 왔어요. 석현님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라고 해서요.”
석현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억을 직접 떠올리실 때마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기억을 직접 떠올리시려고 하는 이유가 있나요? ShadowEgo 서비스를 쓰시면 과거 정보를 빠짐없이 다 찾으실 수 있는데…”
“서비스를 쓰면 정보를 잘 찾을 수는 있는데… 제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을 찾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요.”
“이를테면요?”
“글쎄요, 그 정보가 기억될 당시의 감정이랄까…”
석현은 청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면, 기억과 연관된 감정까지 다시 느끼고 싶어서 직접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면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요.”
“네, 맞습니다.”
“ShadowEgo는 기억을 저장할 때, 해당 기억과 관련된 느낌과 감정까지도 신호로 변환하여 저장하고,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함께 검색, 재현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기술은 완벽하지 않지요.”
“석현님께서 느끼시는 부자연스러움은 ShadowEgo가 재현한 느낌과 뇌가 직접 기억해 낸 느낌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ShadowEgo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게 되어 감정과 느낌에 대한 직접 재생의 빈도가 많이 낮아진 사람들에게서는 발생하지 않는 현상인데요, 석현님은 뇌의 활용 정도가 매우 높은 듯 합니다.”
“서비스를 활용하기 시작할 때에는 그런 내용을 안내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ShadowEgo는 기술적 완성도가 높지 않은 메이커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ShadowEgo의 기술 내용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기술적 이해도가 높지 않은 많은 연구원들과 교수들이 ShadowEgo에 대한 전문가로 자처하고 나섰거든요.”
석현은 매스컴에서 ShadowEgo에 대해 가장 많이 떠들어대던 모 교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청년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이게 웃을 일인가?’

“ShadowEgo의 개념은 Demon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기초 설계와 구현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ShadowEgo를 처음 상용화한 것은 대기업이지요. Demon은 ShadowEgo를 정신질환이나 뇌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쓰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설계했어요. 그래서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초기 버전의 설계 문서까지도 모두 공개했고요. 함께 발전시키기를 바랬던 거죠. 그런데 공개된 초기 문서를 바탕으로 욕심많은 기업들이 기억 저장과 검색을 위한 서비스를 앞다투어 출시한 거죠.”
석현은 왠지 뻔한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순수한 과학자와 돈만 생각하는 사업가들이 얽히는 그저그런 스토리.
“ShadowEgo가 세상에 나온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에 의해 실제로 부작용도 생기고 있지만 다들 못 느끼고 있거나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을 뿐이죠.”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 Demon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죠?”
“Demon 역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열심히.”
“문제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어야 하지 않나요?”
“대기업 및 매스컴의 횡포를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emon은 조용히 자기 몫의 이야기를 해왔어요. 석현님이 Demon의 존재를 아시는 이유죠. “
“그럼, 왜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자세히 해주시는 건가요? 이렇게 따로 불러서까지…”
청년의 미소가 깊어졌다.
“사실, Demon이 해결책을 찾기는 했는데, ShadowEgo에 대한 사람들의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서 아무도 직접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지 않게 되어 최근 10년 동안 부작용을 느끼는 케이스가 없었어요. ”
“당신이 10년 만에 나타난 매우 소중한 케이스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나왔지요.”
석현은 이제서야 Demon이 자신을 직접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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