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그래봤자 다 meme 수프에서 쫓겨난 불순물일 뿐….”
강혁은 ‘1.69호’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어둠이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넓은 광장을 지나 작은 가로등 앞에 서자 크래프트 한 대가 다가왔다.
“어디로 모실까요?”
“갑자기 옛날 흉내를 내는 거야? 다 알면서?”
“가끔씩 20세기 사람의 프로젝션을 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어서요. 손님에게 맞춰주느라. 뭐. 생각보다 재미있는 취미죠.”
“내 취미는 못 알아본 거야? 실망인데.”
“완벽한 스캐너는 없죠.”
“당신네 사장은 구두쇠로군.”
“사장에게 그렇게 전할게요”
크래프트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사원 앞에 그를 내려놓고는 마치 먹이를 쫓는 개구리처럼 초록빛으로 바뀐 채 사라졌다.
강혁은 크래프트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원 안에는 승려처럼 보이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여전하군…”
강혁은 고개를 흔들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지하 108층에서 열리자 무표정한 얼굴로 검게 칠해진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강혁은 그의 오른손이 검푸른 빛을 띠는 것을 보고 그가 하이퍼네트워크에 접속 중이라고 생각했다.
강혁이 다가서자 갑자기 검은 벽이 열리면서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다른 사내가 들어왔다.
강혁은 그가 1.69호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VAT69을 좋아해서? 아니면 1969년부터 팔지 않는다는 술 때문에?
머리 속이 복잡해진 강혁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의 오른손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장군’을 아나?”
강혁은 1.69호의 표정이 역사 데이터에서 본 고려시대 사람의 초상화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장군?”
1.69호의 오른쪽 입꼬리가 잠시 흔들렸다.
“그 자식은 자기가 보는 모든 걸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야.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 찌꺼기라는 소문도 있지. 나는 그가 인공지능이라는 데에 내 재산의 반을 걸었어.”
“항상 변태같지는 않아. 가끔은 아주 철학적일 때도 있더군.”
“그의 채널에 프로젝션하나?”
“가끔은.”
“재미있군. 남에게는 전혀 관심없는 줄 알았는데.”
…..
“조심해. 그 놈 채널에 영원히 갇힌 인간들이 꽤 많으니까. 뇌를 아무에게나 맡기면 생기는 일이지.”
“그렇군.”
“행동과 말투가 그 놈과 비슷한 인간을 발견하면 그 놈의 채널에 갇힌 인간이라고 생각해. 뭐, 어쩌면 그 놈일 수도 있고. 껄껄껄.”
….
….
….
….
그는 한참동안의 침묵 후에 검푸른색으로 다시 변한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쏘지 않는 말벌’을 찾아가 봐. 탈출하는 법을 그녀가 알아냈다는 말이 있더군. 확실하지는 않지만.”
“눈치챘군.”
“환각 속에서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탈출하는 게 꼭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행운을 빌어.”
강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넨 여전히 운이 좋군. 아직 초자아가 남아있을 때 나를 만났으니. ‘장군’도 잡은 먹이를 놓칠 때가 있네. 인공지능도 늙는 건가?”
1.69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튕기는 것을 보며 강혁은 일어섰다.
“이제 가봐야겠어. 그 놈이 돌아올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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