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C708

메시지를 받은 시각은 새벽 2시였다.
명우는 초면인데도 자신의 정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에이전트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TEAM으로부터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명우는 TEAM 에이전트가 일반 네트워크를 썼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모든 것이 이미 다 결정된 것처럼 말하는 태도도 재미있었다. 남의 의견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다음 주부터 TEAM의 내부 에이전트로 일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건을 제시해야 자신들의 제안을 명우가 수락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TEAM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월요일 새벽 1시 4분 53초. TEAM 에이전트는 명우에게 채널 496으로 접속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명우가 접속하자 준희의 모습이 보였다. 명우는 여기서 준희를 볼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못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신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반갑습니다. 저는 TEAM의 ISM을 맡고 있는 경준희입니다.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당신이 대학교수인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준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잠시 흘렀다. 명우는 문득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실제 준희의 얼굴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현재 쓰고 있는 T-nal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명우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완벽히 위장한 자신의 시스템의 존재를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미 느꼈겠지만, T-nal을 써도 TEAM의 내부 시스템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명우는 T-nal 이 TEAM에 대해 가공된 로그만 계속 기록해 오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T-nal은 TEAM을 계속 모니터링해 왔지만 사실은 아무런 정보를 얻어오지 못한 셈이다.
“새로운 임무가 있는데, 당신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 당신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아주 심각한 일이고, 어느 정도 검증된 능력자가 필요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어렵지 않게 승인이 났고요.”
“어떤 임무인가요?”
“ISM의 업무에 대한 소개자료는 이미 당신의 ISM 계정에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ISM의 기본 업무는 네트워크 상에 흐르는 정보의 흐름을 분석하고 해당 흐름의 정체와 원인, 파급력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정보의 흐름이 나타나면 이러한 흐름이 누군가의 의해 의도적으로 발생된 것인지, 흐름을 발생시킨 주된 정보의 내용이 가짜인지의 여부를 분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요.”
명우는 왜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TEAM이 T-nal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유도.
“우리는 처리 대상이 되는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더 나아가 정보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작전도 수행합니다. 물론, 네트워크 상의 사용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요.”
“정보의 흐름을 변화시킨다고요?”
“물론, 과거에는 새로운 이슈를 일시적으로 터뜨려서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방식을 많이 썼습니다만, 요즘에는 그런 구식 방법은 쓰지 않지요.”
준희는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흐름 패턴이 나타나고 있어서 좀 더 면밀한 작업이 필요해졌습니다.”
“새로운 흐름이라면… “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패턴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는 정보의 흐름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요. 다를 뿐만 아니라, 무서운 흐름이지요.”
“무서운 흐름이라고요?”

 

자신의 ISM 계정에 접속하자 업무 내용이 들려왔다.
“3072시간 전부터 새로 나타나기 시작한 미디어 전파 패턴(C708)의 정체를 자세히 파악할 것. 업무 기간은 300시간. ”
명우는 너무나 간단한 업무 내용에 웃음이 나왔다.
“질문은 안 받나?”
“질문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C708에 대해 지금까지 파악된 내용은?”
“의도를 가진 인공지능에 의한 패턴”
“어떤 의도?”
“사람에 의해 부여되지 않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성한 의도. 파괴적이지는 않으나 영향력이 큰.”
“의도의 내용은”
“그건 당신이 파악해.”
“C708이 다른 패턴들과 특별히 어떤 점이 달랐지?”
“그것도 당신이 파악해.”
“패턴이 어디에서부터 나타났지?”
“금방 찾아낼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묻지 마.”
명우는 성격이 매우 거지같은 선임 직원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은 이해하지만, 직접 파악하는 게 더 낫지 않아? 다른 정보들은 선입견을 줄 뿐인데. 어차피 T-nal을 쓸 거면서.”

 

TEAM에 의해 선택된 전문가답게, 명우는 2\~3일 만에 C708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가 행세를 하는 녀석, 호기심이 많은 척 하며 질문을 계속 던지는 녀석, 남이 쓴 내용을 공유, 전파하기만 하는 녀석,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슈에 대해 선제적으로 컨텐츠를 만들어 공개하는 녀석… “
명우는 자신이 만든 “Humanity” 계산법을 기준으로 평가하였을 때, 수치가 낮은 활동주체가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이 활동주체들 사이에는 모종의 연결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체들은 다양한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씩 철학적이거나 일상적인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서 자신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명우는 자신이었다면 이 방법을 택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들이 남긴 이성관계 고민에 대한 상담 글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명우는 Humanity 수치가 낮은 활동주체들이 던지는 질문들의 리스트를 추출해 보기로 했다.
“주체들 사이의 관계성이 보이던가요?”
리스트가 완성되려는 순간 준희가 질문을 보내왔다.
“뚜렷하다고 하기는 아직 어렵지만 패턴은 확실히 보이네요.”
“구식이 되어버린 K2알고리즘을 변형해서 쓸 생각을 한 것은 아주 참신하네요.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명우는 준희가 자신의 모든 행동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잠시동안 잊고 있었다. 그는 인간 최고의 전문가 아닌가.
“우리는 같은 편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준희의 말투는 늘 온화했다. 그러나 너무 티나게 들여다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명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먼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를 상대하는 것은 C708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명우는 일단 C708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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